호텔에서 좀 쉬다가 옷 든든하게 껴입고 스카프까지 둘러맨 뒤 칼튼힐로 가기 위해 나섰다.
얼마전까지만해도 노면 전차 공사한다고 에딘버러 시내가 복잡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지금은 모든 공사가 다 끝나고 노면 전차가 이미 운행하고 있는 상태.
아직은 운행 노선이 많지 않아 에딘버러 공항에서 내셔널 갤러리 정도까지만 운행하는 듯 했는데
최신형 전차 디자인이 이 고색창연한 도시와 크게 불협화음 일으키지 않고
나름 잘 어울리는 듯해서 위화감은 들지 않았다.
경험삼아 한 번 타볼까도 싶었지만 새 노면 전차에 대한 정보나 요금을 잘 몰라서
그냥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웨이벌리 역에서 내려 칼튼힐 방향으로 가던 중에 찍어 본 사진.
이 때가 저녁 8시가 다 된 시각이었는데도 하늘은 아직 밝고 쨍하다.
원래 계획이라면 에딘버러성 구경하고 난 뒤 로열마일을 쭉 걸어내려와 홀리루드 궁전을 구경할 생각이었는데
엘리자베스 여왕이 여름 휴가차 에딘버러로 와서 궁에 머물고 있어서 포기;;;
당연한 거겠지만 여왕이 기거할 때는 관광객들에게 궁전 내부관람을 위한 개방을 하지 않기 때문.
갈매기 녀석이 버르장머리 없이 사람(?) 머리 꼭대기 위에 앉아있길래 재미있어서 한 컷.
이 쪽 길로 쭈욱 걸어 올라가면 칼튼힐이 나온다.
물론 여기도 오르막길. 에딘버러는 무조건 오르막길이다. 무조건.... ㅠㅠ
숨도 차고 다리도 아파서 천천히 산책하듯 걸어올라가는데도 힘들다 헥헥.....
칼튼힐 올라가던 길목에 주차되어있던 미니 쿠페.
나 진정코 이 차 훔쳐타고 칼튼힐로 올라 가고 싶었음. ㅠㅠ
사실 Hill 이라는 이름이 붙긴 했지만 그다지 힘든 코스는 아니다.
웨이벌리 역에서 걸어서 15분 ~ 20분 정도 걸리는 가벼운 산책 코스 정도의 거리.
근데 이노무 저주 받은 허약 체질은 약간의 경사로도 버거울 뿐이고...;;
걸어 올라가다보니 이렇게 골목 벽면에 칼튼힐 이정표가 붙어있는데
곧바로 올라가야 할 것을 왼쪽으로 꺾어 들어간 나. -_-
그랬더니 칼튼힐은 안보이고 이런 개인 주택이 나오심.
다시 되돌아나오려다 집이 좀 멋져서 사진도 찍고 계단참에 앉아서 잠시 다리도 쉬어주고 다시 내려왔다.
아까 칼튼힐이라고 적힌 이정표 골목으로 다시 나와 열심히 올라오니 이런 안내판이 나왔다.
지금 니가 이쪽에 있응께 이 지도 보고 니가 맘에 드는 길로 찾아 올라가보더라고잉?
라고 친절하게 현재 위치를 알려주심.
언덕길을 다 올라왔더니 내셔널 모뉴먼트( National Monument )와 넬슨 기념탑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내셔널 모뉴먼트는 워털루 전쟁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서 짓기 시작했으나
예산 부족으로 중단됐다고 하는 안타까운 사연이 있는 건축물.
애초 계획으로는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을 본따 만들려고 했다고 한다.
넬슨 기념탑.
1805년 넬슨 제독이 트라팔가 해전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좀 더 가까이에서 찍어 본 내셔널 모뉴먼트.
멀리서 보면 그 규모를 가늠하기 어렵지만 건물에 사람이 올라가 있는 걸 보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의외로 칼튼힐에는 관광객들이 거의 없었다.
어차피 단체 관광객들은 이른 시간에 이미 벌써 구경하고 갔을테고
학생들 몇 무리, 연인들 몇 쌍 정도만 언덕에서 한가로이 산책을 하거나 드러누워 담소를 나누는 모습들.
내가 늦은 시간에 도착한 것도 사람들이 별로 없는 이유 중 하나일테지...
칼튼힐 주변으로 한 바퀴 돌 수 있는 산책길이 있어서
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보면 사방으로 트인 에딘버러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멀리 항구의 전경도 보이고 구름 사이사이로 쏟아져 나오는 희미한 햇빛도 목격하고......
산책로 중간 중간에 벤치가 있어 잠시 앉아 쉬면서
북해의 바다와 마른 풀잎이 바람에 서걱이는 풍경을 배경으로 해가 지기 시작하는 에딘버러를 멍하니 바라보다보니
어느새 저녁 9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각.
영국에 도착했던 첫 날, 팔리아멘트 스퀘어에서 빅벤을 바라보며 젖어들었던 고요함과 평온스러움을
이 날 에딘버러에서도 다시 느낄 수 있었던 건 행운.
벤치에 앉아있다가 바람이 너무 차 일어나야만 했다.
산책로를 슬슬 걷다보니 어느새 칼튼힐 한 바퀴..
저 쪽 길로 빠지면 홀리루드 궁전과 아서스 시트 ( Arthur,s Seat )로 이어진다.
산 중앙에 봉긋하게 솟아오른 봉오리 가장 높은 곳이 바로 아서스 시트.
보기엔 가까울 것 같지만 저기까지 올라가는데 최소 한시간 반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물론 난 애초에 올라갈 생각조차 안했지만... ㅎㅎ
칼튼힐에서 에딘버러 야경을 보는게 목적이긴 했지만
막상 올라와보니 인적이 너무 드물고 또 유럽의 여름 특성상 열시가 넘어야 주변이 깜깜해질테니
그 시간까지 혼자 이 곳에 남아있어야 한다는게 살짝 좀 불안해지기도 해서
아홉시 좀 못된 시각에 칼튼힐을 내려와 호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저녁은 호텔 근처에서 먹기로 하고...
올라올 때는 힘들었지만 내려갈 때는 룰루랄라~♬
웨이벌리역과 연결되어있는 프린세스몰.
여러 브랜드의 가게들이 입점해있어서 쇼핑하기에도 편리하다.
에딘버러의 상징과도 같은 특유의 우중충하면서도 격조있어 보이는 건물들.
런던보다는 이런 특유의 에딘버러 분위기가 더 마음에 들었다.
노면 전차의 지상 레일은 웨이벌리역까지 가지 않고 이 쪽 대로에서 꺾어지는 노선.
아마도 해안가 항구쪽으로 연결되는 듯.
프린세스몰 맞은 편에 있던 TOP SHOP.
TOP SHOP은 영국의 대중적인 쇼핑 체인으로 영국 어느 도시든 입점해 있는 듯.
프린세스몰 입구 쪽에 세워져 있던 둥근 조형물.
뭔가 심오한 뜻의 조형물이겠거니 했었는데 들여다봤더니 애들 팡팡 뛰어노는 놀이기구 트램폴린이.... -0-
스콧 기념탑.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작가 월터 스콧( 1771~1832 )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탑이다.
전통적으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사이가 좋지 못한데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 올린 넬슨기념비의 높이( 50M )를 알고난 후 그보다 5M 를 더 높게 지어올렸다고...
이런걸로도 자존심 싸움하며 신경전을 벌이는게 스코틀랜드인. ㅎㅎㅎ
윤회라는 심오하고 철학적인 주제를 다룬, 그러나 흥행에서 참패를 면하지 못한 워쇼스키 남매(?)의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에서 시대별로 다루는 여섯가지 에피소드 중
한 이야기 줄거리의 주인공인 천재작곡가 로버프 프로비셔( 벤 위쇼 )가
자신의 동성 애인 식스미스를 만나기 위해 올라왔던 장면을 촬영한 장소이기도 하다.
탑 중간에 전망대가 있는데 입장료를 내면 올라갈 수 있는걸로 알고 갔었는데
막상 가보니 입구도 찾아볼 수 없었고 티켓 판매소도 없었다.
그 사이에 개방하지 않는 것으로 규칙이 바뀌었는지 어쩐지 이유를 알 수는 없었지만 좀 아쉬웠다.
이 곳 전망대에서 벤 위쇼가 된 기분으로 에딘버러 시내를 조망하고 싶었거든... =_=
스콧 기념탑 뒤쪽으로 펼쳐져있는 공원.
무성한 나무들과 공원 뒤 편 언덕길에 위치한 건물들은 에딘버러 대학.
스콧 기념탑 옆에 있던 공중관람차.
검고 우중충한 고딕 건물들과 붉은색의 조화는 매우 바람직했음.
웨이벌리역과 스콧 기념탑이 있는 이 도로가 바로 에딘버러의 메인 스트릿인 PRINCESS STREET.
영화 트레인스포팅의 오프닝 씬에서 주인공 랜튼이 경찰에게 쫒기면서 미친듯이 질주하던 바로 그 도로.
근데... 나 본의아니게 왜 자꾸 영화 로케지 여행기가 되고 있는거냐고요.... ㅠㅠ
버스를 타고 헤이 마켓에서 내렸다.
시간은 거의 9시 반이 넘어가는데도 아직 해가 지지 않고 있는 에딘버러.. -_-
호텔로 돌아가기 전에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가려고 레스토랑 찾아 동네를 어슬렁 어슬렁.
뭔가 매우 발랄하고 화사한 느낌의 펍.
근데 아마도 주류 전문일 것 같아서 별로 들어가고 싶은 느낌이 안들어서 패스~!!
아무래도 런던의 펍 드래프트 하우스에서 들었던 NO FOOD 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각보다는 컸던 것 같다.
늦은 시각이라 식당을 제외한 대부분의 가게들은 이렇게 전부 영업종료 상태.
케밥집이 문을 열어두고 있긴 했지만 영국까지 와서 케밥을?... 싶어서 여기도 패스~!!
피쉬앤칩스를 먹고 싶은데 마땅한 곳이 없다. 으허헝.... ;ㅁ;
헤이마켓 역 근처를 10분 가량 돌아다니다 드디어 마땅한 곳 발견~!!
펍 이름이 헤이마켓이다.
펍 입구에 메뉴판을 비치해놓아 이것저것 요기거리를 훑어봤는데
식사 메뉴가 어느 정도 잘 갖춰져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헤이마켓에서 가장 오래된 전통의 펍 어쩌구 저쩌구 우리집의 자랑거리는 신선하고 맛난 대구로 만든
피쉬앤칩스 어쩌구 저쩌구하며 자기 가게 PR을 근사하게 해놨길래 여기서 먹기로 낙찰~!!
근데 분명히 가게 바깥에서 입구 사진이랑 간판도 함께 찍어뒀었는데
사진이 사.라.졌.다.
이러니 제대로 된 여행기를 쓸 수가 있냐고요... 절름발이 여행 포스팅이 될 수 밖에... ㅠㅠㅠ
BAR 에 가서 웨이트리스에게 혼자 왔다고 말하고 피쉬앤칩스랑 콜라를 주문한 뒤 계산까지 완료~!!
아무 자리에나 마음에 드는 곳으로 앉아 있으면 직원이 음식을 가져다 줄테니 기다리라고 해서
창 쪽 푹신해보이는 소파 좌석으로 가서 얌전하게 앉아 기다렸다.
자리에 앉아 지친 다리를 쉬고 있으려니 가련(?)하게 생긴 남자 직원이 와서 양념통을 놓고 갔다.
발사믹 식초, 소금, 후추, 케첩, 스테이크 소스가 들어있음.
얼음과 레몬을 띄운 유리잔에 병 콜라가 먼저 나와 홀짝홀짝 마시면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주문한지 10분 쯤 지났을까?
드디어 나온 피쉬앤칩스.
근데 접시가 테이블에 놓이자마자 무지하게 실망한 나.
피쉬앤칩스는 노릇노릇하게 튀겨져야 하는건데 접시에 담겨져 나온 피쉬앤칩스는
기름에 푹 절은데다 시커먼 갈색으로 오버쿠킹이 되어 나왔다.
튀김 옷은 너무 지나치게 무겁고 두터운데다 벌써 몇 십번은 튀겨냈음직한 오래된 기름 상태,
요리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잘 못 튀겨져 나온거라는걸
한 눈에 알아챌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뭐라고 한 마디 좀 하고 지랄떨며 새로 만들어오라고 진상을 피우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영어로 싸울(?) 자신이 없어서 그냥 조용히 분노를 삭히고 이 불행을 견디기로 마음먹고
칼 질을 하는데 속에서 부글부글 끌어오르며 부아가 치미는 바람에
참을 인(忍)자를 백만오십번 정도는 새겨야만 했다.
그나마 대구살은 실하고 신선해서 다행...
이렇게 좋은 재료를 두텁고 무겁게 덧입힌 맛없는 반죽과 오래된 기름으로 망쳐놓다니,
주방장 면상에 펀치라도 날리고 싶은 심정. ㅠㅠㅠ
기름에 푹 절은 탓에 타르타르 소스 듬뿍 묻혀가며 먹었지만
배가 고픈 상태였는데도 저 튀김옷 때문에 잘 넘어가지를 않아서
결국은 콜라만 냅다 들이키고 칩스만 집어먹다가 절반 가까이나 남기고 나와야만 했다.
음식을 이따구로 만들어 내놓는 주제에 가격은 호되게 비싸서 피쉬앤칩스만 10.25 파운드.
어흑~!! 짜증나.... 영국 와서 처음으로 맛 없는 음식 테러를 당했던 터라 몹시 화가 났는데다
배까지 덜 차서 더. 더. 더....!!! 분노에 떨어야만 했다.
헤이마켓 펍.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ㅠㅠ
결국 이 날은 배 부르게 먹지도 못하고 심신이 잔뜩 지친 상태로 호텔로 돌아와
쓸쓸히 잠자리에 들어야만 했다는 슬픈 이야기로 끄읕~!!!!
※ 밤이 되니까 기온이 많이 내려가 뜨거운 물로 샤워한 뒤 긴 팔 티셔츠 입고 머리까지 이불을 끌어올리고 잤었다.
7월 말 날씨가 이렇듯 추우니 에딘버러는 일년 내내 에어컨이 필요없는 동네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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